당신의 마음을 주면 바뀌는 것 – Sebasi Sub tiếng Hàn

안녕하세요 ‘소녀 방앗간’의 김민영입니다 저는 스무 살에 제 첫 마음을 고등어에게 주었습니다 (웃음) 저는 스무 살 때 학비랑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 하는 대학생이었어요 대부분 그러시죠? 학비랑 생활비를 벌려다 보니까 알바도 투잡, 쓰리잡, 할 게 좀 많았습니다 그러다 첫 여름 방학이 됐을 때 목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이 됐잖아요? 그래서 백화점에서 고등어 알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여섯 분의 쟁쟁한 어머님들이 계셨지만 (웃음) 제가 뽑혔습니다 잘 웃어서 뽑아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고등어를 굽게 됐습니다 고등어, 삼치, 임연수, 메로 저는 그렇게 세상에 많은 생선들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근데 그 와중에, 저는 매일 매일 지하 3층의 주방 구석에서 고등어를 굽고 이게 구워지면 얼른 들고 나가서 고등어를 팔았습니다 매일 그렇게 땀을 내면서 다니는데 쉬는 시간마다 여사님들이 믹스 커피를 타주셨어요 그럼 그게 그렇게 꿀맛이었습니다 주방에서 쪼그려 앉아서 믹스 커피를 먹으면서 저는 그 여사님들이랑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제가 세상에서 제일 고생 많이 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고작 스무 살이었는데 인생에서는 성공이나 실패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꼭 성공하고 싶었던 그런 그냥 학생이었습니다 그렇게 인생은 ‘흑과 백’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여사님들의 사연은 엄청나게 대단했습니다 어렸을 때 잃어버린 딸을 보는 것 같다고 저를 볼 때마다 우시는 여사님도 있었고요 남편의 사업이 망해서 그 빚을 갚고 계시다고 도저히 쉴 수가 없다고 푸념하는 여사님도 계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다양한 사연들을 들으면서 ‘아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그때까지 친구, 가족, 선생님밖에 없던 학생이었는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색깔을 내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 뒤에 저는 케냐에 가게 됐습니다 대학교 21살이었어요 전 세계 나라의 대학생들이 모여서 케냐에서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꼭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게 됐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콜롬비아인 친구를 만났어요 저는 영어를 잘 못 합니다 영어를 잘 못 했는데도 눈짓, 발짓, 손짓 하면서 그 친구랑 마음을 나눴습니다 그 친구랑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저는 ‘이런 친구들도 있구나!’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있고’ ‘이 친구랑도 나는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그 친구랑 20일 동안 정말 진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저는 사파리로, 그 친구는 몸바사 (Mombasa) 라는 해변으로 떠나게 됐습니다, 각자 떠나가는 날, 다음에 꼭 다시 한번 만나자고 보고 싶을 것 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파리로 떠났죠 이게 비포장도로인데요, 비포장도로를 7시간 달리면서 하나 소식을 들었습니다 해변으로 가는 버스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구나. 작은 교통 사고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망자가 한 명이래요 그리고 한 명은 팔이 잘렸다고 합니다 어후! 생각만 해도 무 무서웠고 설마 했습니다 근데 사망자가 콜롬비아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정말 많이 슬펐습니다 바로 어제까지 저랑 마음을 나눴던 친구인데 갑자기 몇 시간 뒤에 없다는 게 납득이 도대체 안 갔습니다 저는 가는 비포장길 내내 엉엉 울었습니다 마치 제가 죽은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사파리에 도착을 했습니다 사파리에 도착해서 저런 지평선을 앞에 두고 저는 ‘아, 내가 죽진 않았네, 내가 여기 살아는 있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일곱 시간 동안 죽음과 삶에서 저는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고 그 친구의 죽음이 마치 제 죽음인 양 무나 슬펐습니다 근데 지평선을 보고 제가 살아있음을 다시 느끼면서 그 친구의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됐습니다 ‘마음을 나눈 사람, 마음을 서로 주고받은 사람이라는 게’ ‘서로의 삶과 죽음에 정말 깊숙하게 공감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케냐에 그 친구를 두고 오게 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어요 그렇게 다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되게 잘 쓴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그럼 진짜 그런 줄 알잖아요 그래서 저도 제가 글을 되게 잘 쓰는 사람인 줄 알았고 ‘앞으로 글 쓰는 직업을 해야 되겠다’ 라고 당연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하게 신문방송학과를 갔어요 신문방송학과를 가서 신문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신문 기자를 해서 제 글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저는 홍보팀 인턴으로 스물 세 살부터 일을 하게 됐습니다 꽤나 할 줄 알았어요 좀 잘 할 줄 알았는데 가자마자 저는 커피 타는 거 복사하는 것부터 맨날 실수투성이였습니다 뭐만 하면 혼나고 뭐만 하면 혼나고 계속 혼나고 혼남의 연속이었습니다 회사를 가는 지하철 안이 ‘내가 정말 지옥으로 가는구나’ ‘싶어서 지옥철이라고 불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정말 일을 못 하는 사람인가보다’ ‘나는 좀 별로인가보다’ 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럴 때 ‘1만 시간의 법칙’ 이라는 책을 봤습니다 그 책을 보니까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은 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생각을 해보니까 전 1만 시간도 안 하고 ‘내가 못한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1만 시간 해서 잘할 수 있다면 나도 그럼 1만 시간을 해 보면 잘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서 그때부터 항상 쉽고 빠르고 편하게 하려고 했던 제가 바보 같아도, 이게 삽질이라고 해도 하나하나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업체를 찾으라고 하면 포털에서 검색을 해서 나오는 모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그 업체들을 조사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열심히 회사를 다니다가 2년 뒤에 퇴사를 통보받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난 정말 열심히 내 마음을 다 바쳐서 했는데’ ‘나는 왜 퇴사가 되어야 되나?’ 원망스러웠습니다 난 정말 열심히 온 마음을 다했는데 그러고 나서 집에서 한 2주 동안 혼자 누워만 있었어요 힘이 다 풀리더라고요 마치 내가 정말 사랑을 한 남자친구한테 버림받았듯이 전 굉장히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2주 동안 집에만 있다 보니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마음을 준 것도 내 선택이고 내가 마음을 주기로 한 거였고’ ‘그래서 진짜 내가 마음을 줬는데 나는 왜 다른 사람을 탓하고 있나’ ‘그냥 그게 내 선택이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좀 비워졌습니다 제가 원망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 대상이 아니었어요 저는 그 시간 동안, 회사에서 그렇게 열심히 일한 시간 동안 정말 값진 시간을 겪었던 겁니다 정말 많이 배웠고 정말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면 된 거였는데 더 다니고 싶은 욕심에 어떤 대가를 바라고 제 마음을 준 것에 대가를 바라왔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마음을 비울 수 있었어요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저는 청송으로 떠나게 됐습니다 청송입니다 청송에는 참 별게 없었어요 정말 열심히 일하는 어르신들 옆에서 농사를 도와드리고 농산물 유통을 하는 젊은 언니들과 함께 컨테이너 박스에 잠깐 머물렀습니다 집 앞 장독대에서 푹푹 담아주는 된장으로 된장국을 끓이고 바로 앞에 텃밭에서 딴 채소로 야채를 무쳐주셨어요 바로바로 숨벙숨벙 썬 고기를 볶아주셨어요 그 단순한 음식들에 저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제가 그때 매일 먹었던 밥입니다 (웃음)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님들이랑 친해져서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무 된장 맛있어요 정말 제가 서울 가져가고 싶어요” “무 맛있는 거 같아요” 할머님들은 “는 먹어봐서 알지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값지게 1년, 2년 담근 발효장 발효청들이 도시에서는 안 팔린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왜 안 팔려요? 이렇게 맛있는데” 도시 사람들은 편하고 쉽고 빠른 것만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1년, 2년의 시간을 안 기다려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매번 헐값에, 혹은 단체로 농산물을 납품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열아홉 살 때부터 서울에서 자취를 했습니다 매일 편의점 도시락과 김밥을 먹었습니다 가끔 하는 외식을 할 때도 그냥 멋스러울 뿐이지 이런 위로감을 받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에 가져가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제가 받은 이 위로감을 다시 한번 전달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 우연히 성수동에 있는 (정)경선 대표님을 만날 수 있게 됐고 제 이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제가 마음을 먼저 주지 않았는데도 먼저 준 그 마음이 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어떻게든 비용을 좀 아껴서 뭐라도 좀 도움이 돼볼까 해서 인테리어를 직접 하기로 했습니다 매일 매일 현장에 계신 반장님들에게 욕을 먹었습니다 “뭘 알고 해야지 도면도 안 그려오고” “뭐 하나 알지도 못하고 이 재료가 뭔지 이름도 모르면서” “왜 아는 척하고 여기서 뭘 할려고 하냐? 도면이라도 그려 와야지” 도면을 그렸습니다 (웃음과 박수) 저희 반장님들이 헛웃음을 웃으시더라고요 “그래 내가 졌다” “그래 니 하고 싶은 걸 다 말해봐 해줄게, 싸게 해줄게” 그래서 그 때부터, 매일 매일 반장님들과 함께 동고동락했습니다 그렇게 23일의 시간이 걸려서 성수동에 있는 ‘소녀방앗간’이 완성이 됐습니다 (박수) 첫날 ‘한 20그릇만 팔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정말 첫날 20그릇이 팔리더라고요 그래도 오시는 분들이 “오, 이런 걸 서울에서 파는 데도 있어요?” “오, 이렇게 조미료 안 넣은 맛은 처음인데 오, 맛있다” “괜찮다, 또 한 번 와봐야 되겠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무 감사했습니다 저는 이 분들한테 위로를 드리려고 이 식당을 시작했었는데 전 오히려 이 분들에게 마음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입니다 매일 아침 일찍 나가야 되고요 매일 아침 식재료를 전처리를 하고 매일 매일 서 있어야 되고 매일 매일 다른 손님들을 만납니다 저희 부모님은 항상 저를 보시며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냐?”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이 일은 우리가 매일 먹는 밥에 대한 일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청송에서 그랬듯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밥을 파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마 이 자리에 선 것 같습니다 (박수) 하지만 이 모든 여정에는 반드시 동료가 필요합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희한테는 정말 다양한 숨어있는 영웅들이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소녀방앗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청송에서 직접 살면서 아기까지 낳으면서 저희의 식재료를 생산하고 구매를 해주는 친구 매일 매일 천 인분 식사의 반찬을 준비하는 친구 로펌에서 되게 잘 나가는 변호사님이셨는데 이제는 서빙까지 하는 친구 최연소로 회사에 들어와서 이제는 어엿한 팀장이 되어가는 친구 정말 공부를 많이 한 디자이너님이셨는데 매일 매일 새벽마다 포장을 하고 있는 친구 정말 많은 친구들이 저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녀방앗간은 이제 매일 20그릇의 식사에서 매일 800그릇씩 식사를 준비해드리면서 여러분과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것이 뭘까요?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어떤 걸까요? 책임감일까요, 사랑일까요? 성실함, 열정일까요? 저는 다였던 것 같아요 근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마음을 주는 것 내가 조금 손해보는 것 같아도 내가 조금 바보 같아 보여도 내가 조금 실패할 것 같아도 내가 먼저 마음을 주는 것 그것도 아무 대가가 없이 내 마음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만약 마음을 주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 한 번 줘보세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됩니다 진심을 향해서 주면 그게 아무리 바보 같다고 할지라도 세상이 그렇게 바보 같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는 그래서 지금 굉장히 행복합니다 마음을 주시고 마음을 받으세요 그리고 꼭 여러분들이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글자막 : 강혜린 (khlin@naver.com) 한글검수 : 최두옥 (doo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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